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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K포럼] 민희진 “뉴진스 음악, 1위 못한다는 의견多,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뉴진스 기획 당시 “그런 음악은 먹히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11일 연예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와 경제종합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공동 주최하는 ‘2023 K포럼’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JW메리어트호텔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됐다. ‘2023 K포럼’은 서울특별시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가 후원한다.민 대표는 “기획 당시 ‘그런 음악을 하면 1위 못한다’, ‘해외 팬들이 싫어한다’고 조언해줬던 사람들도 사실 많았다. 조언이라기보다 의견을 많이 줬다”며 “그래서 더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잘될 줄 알았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은데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잘하니까 잘될 거야’가 아니라 소비자를 존중했다”며 “K팝 신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고, 이를 단순히 채워주는 게 아니라 다른 영역과 함께 채워준다면 소비자들이 알아볼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를 많이 썼다. 뉴진스 데뷔 1년까지 개인적으로 쉬는 시간 없이 끊임없이 고민했다”며 “그래도 확신이 있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분명 좋아해줄 거라 생각했다. 해외에서도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기대일 수도 있지만 천만다행으로 이렇게 반응해줘서 감사한 일이다.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이 크다”며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들 중 하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3 K포럼’은 ‘대한민국이 브랜드다’(Korea is the Brand)라는 슬로건으로 전세계적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룬 K콘텐츠, K브랜드의 현주소를 짚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토론을 나누는 자리다. 1세션은 ‘K콘텐츠를 통한 브랜드 세계화 전략’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드라마를 넘어 ‘윤식당’과 ‘서진이네’ 등 예능을 통해 K푸드로 해외시장을 직접 노크한 이서진을 비롯해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글로벌 시장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한 K콘텐츠와 K브랜드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좌장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가 맡았다. 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 2023.09.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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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K포럼] 윤제균 감독 “전 세계가 K컬처로 대한민국 주목… 천재일우의 기회”

윤제균 영화감독이 K컬쳐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일정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며 K컬처로 인해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선진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11일 연예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와 경제종합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공동 주최하는 ‘2023 K포럼’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JW메리어트호텔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됐다. ‘2023 K포럼’은 서울특별시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가 후원한다.이날 포럼의 기조연설은 ‘K가 대한민국의 가치를 높인다’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에 이어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대한민국 최초 쌍천만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윤제균 감독이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다.윤 감독은 “K포럼에 나를 초대해주신 분은 일간스포츠의 전형화 기자님이다. 조그만 곳에서 편하게 와서 말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장소인 줄 몰랐다. 연설을 준비하면서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어 좌중을 웃음짓게 했다.본격적으로 연설에 나선 윤 감독은 드라마 ‘겨울연가’부터 시작해 방탄소년단까지 현재로 이어지는 한류의 흐름을 한눈에 보는 영상을 시청했다. 윤 감독은 “이제는 약 70억 인구 대부분이 K컬처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구촌 인구 모두가 대한민국을 알고 있다.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이랬던 적이 있었던가?’라고 되짚어 보면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전 세계가 K컬쳐를 통해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안다는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짚었다.윤 감독은 최근 2년 간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K문화의 인기를 실감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윤 감독은 2년 전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을 처음 개관했을 때 CJ 이미경 부회장, 배우 윤여정, 이병헌, 강동원과 함께 초청을 받아 박물관을 방문했다.윤 감독은 “제가 꿈에서 생각했던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분들과 제작자분들이 다 계셨다. 그 분들이 윤여정 선배님을 다 아시더라. 그때 윤여정 선생님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하신 후였다”고 회상했다. 그곳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 부회장과 윤여정, 이병헌을 먼저 알아봤고, 이를 본 윤 감독은 대한민국의 콘텐츠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느낀 것이다. 이 외에도 윤 감독은 2-3만명이 수용 가능한 LA 구장에 초대된 K팝 아티스트의 무대를 보고 외국인들이 다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고 밝혔다.윤 감독은 “우리나라는 K콘텐츠를 중심으로 5000년 역사에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은 거라 생각한다. 이 기회를 정말 잘 살렸으면 좋겠다”며 “우리나라 K콘텐츠, K컬처가 왜 이렇게 세계인들에 주목을 받고 각광을 받는지 생각해봤다”고 했다. 윤 감독이 내린 답은 과거 윤여정이 말한 대답과 같았다. 윤 감독은 “‘우리나라에는 늘 예전부터 좋은 콘텐츠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가 우리를 주목한 것이다’라는 윤여정 선생님의 말에 공감했다”면서 “춤과 예능에 능한 민족이라는 게 역사를 통해 수 천년 동안 증명됐고, 이제야 빛을 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끝으로 윤 감독은 K컬처가 지속돼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감독은 “한때 홍콩 영화가 아시아를 지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투자 감소, 콘텐츠 불법 성행 등의 이유로 홍콩 영화가 영광을 잃어버렸다. 일본 콘텐츠도 과거에 비해 많이 빛을 잃어버렸다”며 “투자의 순환구조가 유지될 때 K콘텐츠도 오래 갈 수 있다. 탈규제, 공정, 글로벌 경쟁 강화를 위해 어떻게 정부에서 지원을 해야할 지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지자체적인 노력을 당부했다.윤 감독은 “K포럼을 통해 전 세계인이 매년, 매월, 매주, 매일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음식도 먹고, 음악도 들으며 일상 속에서 한국 문화를 즐기게 될 때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선진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2023.09.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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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K포럼] 이특 “K팝의 빛나는 위상 체감… ‘K포럼’ 영감 나누는 자리 되길”

그룹 슈퍼주니어 이특이 ‘K포럼’이 전 세계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성과를 알리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11일 연예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와 경제종합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공동 주최한 ‘2023 K포럼’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JW메리어트호텔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됐다. ‘2023 K포럼’은 서울특별시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가 후원했다.이특은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개회식 두 번째 축사자로 나섰다. 2세대 대표 아이돌 그룹이자 한류 개척의 주역인 슈퍼주니어 멤버답게 이전에 비해 높아진 K팝 아티스트 위상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단상에 오른 이특은 “우리는 슈퍼주니어예요!”라고 경쾌한 인사로 축사를 시작해 박수 갈채를 이끌어냈다. 이어 본격적으로 축사를 시작한 이특은 “한류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2005년에 슈퍼주니어로 데뷔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며 “시간이 갈수록 날로 높아지는 K팝의 빛나는 위상과 한류 열풍을 더욱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특은 이러한 경험 덕분에 ‘2023 K포럼’ 축사로 초청받게 됐다고 말했다.이특은 2008년부터 펼쳐온 슈퍼주니어의 월드투어 콘서트 브랜드 ‘슈퍼쇼’ 공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펼친 공연이 벌써 150회를 넘었을 정도로 글로벌 각지의 팬분들과 더욱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며 “또 슈퍼주니어는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데 이어, 올해 사우디아라비아 관광청 홍보대사에 위촉돼 데뷔 18년이 지난 지금도 글로벌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안주하지 않고 각 멤버별로 MC, 연기, 뮤지컬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멤버 별 활동 역시 더욱 확장하고 있다”며 슈퍼주니어 멤버 개개인의 역량을 강조했다.이특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로 확대된 ‘K’ 열풍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많은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포럼이 그 영감을 나누는 자리가 돼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성과를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K포럼을 통해 꿈과 희망과 기회를 얻기를 희망한다는 말도 덧붙였다.끝으로 이특은 “이제 시작될 K포럼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K포럼이 앞으로 더욱 확장하고 발전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면서 “저 이특과 슈퍼주니어도 제 자리에서 활발한 활동 보여드릴 테니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고 축사를 마쳤다.‘2023 K포럼’의 슬로건은 ‘대한민국이 브랜드다’(Korea is the Brand). K팝, K드라마, K무비 등 K콘텐츠가 세계 콘텐츠 시장의 중심으로 우뚝 서면서 이제 ‘K’라는 이니셜은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식되고 있다. K포럼에서 이 같은 눈부신 성과를 이룬 K콘텐츠, K브랜드의 현주소를 짚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토론을 나눴다.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2023.09.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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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K포럼] 뉴진스·오징어게임·서진이네·국제시장…'K'의 흥행 주역들 한자리에

뉴진스, ‘오징어게임’, ‘서진이네’, ‘해운대’, ‘국제시장’…. 각 장르 최고 K콘텐츠를 이끈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걸그룹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제작한 싸이런픽쳐스의 김지연 대표, 한국의 맛을 외국 현지에 직접 전한 예능 ‘서진이네’의 맏형 이서진, 천만영화 ‘해운대’와 ‘국제시장’ 두편으로 대한민국 첫 쌍천만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윤제균이 11일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JW메리어트호텔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2023 K포럼’에 참석한다.이들은 국내 최초 연예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와 전통의 경제종합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대한민국이 브랜드다’라는 슬로건으로 공동 주최해 올해 제1회가 개최되는 K포럼에서 ‘K’의 미래와 발전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K’라는 이니셜은 이제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K’는 요리, 뷰티, 아트 등 다양한 분야들과 결합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세계 곳곳에 재확인시키고 있다.‘2023 K포럼’은 K콘텐츠를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높은 평가를 이끌어내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K’들이 어떠한 융·복합이 가능한지, 이를 통해 어떤 성과를 끌어낼 수 있는지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비즈니스 각 분야의 효율적인 융·복합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런 콘텐츠들이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다른 산업분야와 융·복합으로 시너지를 냄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데뷔 6개월 만에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 진입한 뉴진스는 K팝 분야에서 K의 대표 주자 중 하나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또 ‘오징어게임’은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최초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4관왕에 올랐다. ‘서진이네’는 배우 이서진이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 김태형(뷔)과 함께 멕시코에서 분식집을 열고 장사를 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해운대’와 ‘국제시장’은 국내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특히 ‘국제시장’은 지난 2015년 미국 연방의회에서 상영돼 당시 관객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런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영향력을 갖추기까지 현장에서의 생생한 이야기, 또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들에 대한 논의를 ‘2023 K포럼’에서 들을 수 있다.국제문화교류 진흥 전담기관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정길화 원장이 윤제균 감독과 함께 기조연사로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SNS에서 수많은 팬덤을 보유한 크리에이터 양수빈과 청담언니, ‘충주시 홍보맨’이라는 별칭으로 유튜브 충주시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김선태 충주시청 주무관, 일본에서 활동을 하며 K뷰티의 현지 전파에 기여하고 있는 일본인 인플루언서 키리마루 등도 참여해 MZ세대가 선호하는 채널, 플랫폼과 K의 결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기업 관계자로는 MCN기업 트레져헌터 송재룡 대표, 지우컴퍼니 송지우 대표, 패션플랫폼 왈라랜드 운영사 왈라 이성이 대표, 글로벌 진출 원스톱 솔루션 서비스기업 스페셜원메이커스 김동균 대표, 이치형 CJ푸드빌 본부장, 명지윤 경남제약스퀘어 팀장 등이 참여한다. K아트의 대표 주자로 찰스장이 참여해 브랜드와 콜래보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1세션 ‘K콘텐츠를 통한 대한민국 브랜드 세계화 전략’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하는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2023 K포럼’은 K콘텐츠가 전 세계적 주목을 받는 시기에 좀 더 내실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특히 기대가 크다”며 “K콘텐츠가 거둔 그간의 성과는 물론 향후 방향까지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2023 K포럼’은 서울특별시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가 후원한다. 오후 1시 20분부터 유튜브 생중계로 시청할 수 있다. 2023.09.11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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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싸이 "난 최고가 되려하지 않았다. 유일하고자 했을 뿐"

“최고가 되려고 했던 것보다 유일하고자 노력했던 게 항상 긍정적인 결과물을 가져와준 것 같습니다.”가수 싸이가 2023년을 긍정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을 이 같이 제시했다.싸이는 일간스포츠 재창간을 맞아 최근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경제전망, 국제정세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도 음악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긍정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는지를 묻자 “저도 피네이션도 좀 더 유일한 것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긍정 에너지를 녹여낸 듯 대중을 기분 좋게 만드는 특유의 음악 스타일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온 자신만의 방식이었다. 어두운 전망 앞에서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을 팬과 대중들, 새 출발을 하는 일간스포츠에게 건네는 조언이기도 했다. ◇K팝 신의 빌보드 개척자 싸이는 21세기 들어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차트인 빌보드 메인 음원 차트인 핫100 최상단에 한국 가수로는 처음 이름을 올린 주인공이다. ‘K팝 신의 빌보드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싸이는 지난 2012년 발매한 정규 6집 ‘싸이6갑(甲) 파트1’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그 해 10월부터 빌보드 핫100 2위에 7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에서는 ‘강남스타일로’ 아시아 가수 최초 1위 기록도 세웠다. 또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제40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뉴미디어상’을, 이듬해 5월에는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스트리밍 송(비디오) 상’을 받았다.당시 K팝이 아시아를 제외하면 글로벌 대중음악 시장에서 변방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이후 2013년 발표한 ‘젠틀맨’으로 빌보드 핫100 5위 및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0위, 지난해 방탄소년단 슈가가 피처링에 참여해 발표한 ‘댓 댓’(That That)으로 빌보드 핫100 80위 및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60위 등 발표곡들을 글로벌 차트에 랭크시켜 왔다.“데뷔 후 처음으로 연예지면 상단을 가득 채웠던 첫 기사가 일간스포츠 기사였어요. 2001년 3월께에 ‘싸이의 경고, 립싱크는 가라’ 이런 제목의 기사였는데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웃음)싸이가 데뷔 앨범 ‘싸이 프롬 더 싸이코 월드’(Psy From The Psycho World)를 발매한 게 2001년 1월 18일이었다. 일간스포츠는 싸이를 데뷔 초부터 주목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올 만큼 그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일간스포츠와 인연…도약도 함께그 사이 싸이는 월드스타를 넘어 자신의 예명 이니셜(P)을 딴 기획사 ‘피네이션’을 설립하고 소속 아티스트 겸 대표 프로듀서로도 활약 중이다. 자신의 음악활동을 하면서 크리쉬, 헤이즈, 페노메코, 스윙스 등 소속 후배들의 작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침 재창간을 한 일간스포츠와 싸이, 피네이션이 비슷한 선상에 섰다. 피네이션이 지난해 5월 데뷔시킨 6인조 보이그룹 TNX가 지난 15일 두 번째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 도약에 나선 것이다. TNX는 2021년 SBS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LOUD: 라우드’를 통해 결성된 그룹으로 지난 15일 두 번째 미니앨범 ‘러브 네버 다이스’(Love Never Dies)를 발매하고 더블 타이틀곡 ‘아이 니드 유’(I Need U)와 ‘러브 오어 다이’(Love or Die)로 활동에 돌입했다. 일간스포츠와 피네이션, TNX 모두 또 한번의 도약에 나서는 시점이다.싸이는 일간스포츠의 재창간을 축하하며 “제가 데뷔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간스포츠는 늘 한결 같았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대한민국 1호 스포츠신문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면서 연예·스포츠계의 파수꾼으로서 역할을 다해 달라는 당부였다.자신은 피네이션을 이끌고 새로운 음악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싸이는 “이전보다 빠른 호흡으로 팬분들에게 새로운 콘텐츠를 자주 선보이는 것이 2023년의 목표”라고 말했다.“좋은 음악 콘텐츠를 열심히 제공함으로써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지쳐 계실 많은 분들에게 응원이 되고 싶습니다.”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로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는 각오였다. ‘강남스타일’의 일명 말춤을 비롯한 익살맞은 표정과 퍼포먼스, 위트 있는 가사로 팬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선사하는 것뿐 아니라 싸이는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더 이상 쓸쓸해 하지 마요 이젠 나와 같이 가요”라는 가사의 ‘아버지’라는 노래로 감동도 전했다. 그가 세상에 보낸 것은 종합적인 위로의 메시지였다. 지난해 정규 9집 ‘싸다9’를 발매한 만큼 싸이는 올해 정규 10집을 준비 중이다. ◇“준비가 기회 만나, K팝 대운 올해도 계속”이제 K팝 신은 글로벌 대중음악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위상이 정립됐다. 올해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경제위기는 소비심리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음원, 음반은 물론 공연, 굿즈까지 상황을 낙관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K팝 신의 글로벌 시장공략을 주도해온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군입대로 인한 활동 공백기도 예정돼 있다.싸이는 이 같은 상황에서도 K팝 신의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싸이는 “K팝은 계속해서 대운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위상 또한 견고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나야 펼쳐질 수 있다고 본다”며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음악, 뮤직, 퍼포먼스 모든 부분에서 철저한 준비를 통해 만전을 기한 뒤 좋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싸이 스스로도 매번 신곡을 발표할 때 음악과 퍼포먼스뿐 아니라 외모와 의상 스타일까지 치열하게 고민해 완제품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K팝은 ‘코리안 팝’의 약자입니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제작된 다양한 한국 팝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주목받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싸이는 요즘 한국에서 인기 장르로 부상한 트롯의 세계화 가능성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제 한국에서 주목하는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도 사실이다. K팝에 ‘낯섦’이라는 색안경 대신 ‘기대감’이 씌워지기도 했다. 올해 아이돌 그룹뿐 아니라 다양한 K팝 신의 가수들이 글로벌 시장에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이유다.싸이는 “올해 문화 전반에 1990년대 유행했던 콘텐츠들이 다시 돌아올 것 같다. K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저 싸이와 저희 피네이션 아티스트에게 항상 많은 성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며 “보답하는 한 해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김은구 기자 cowboy@edaily.co.kr 2023.02.21 05:30
스포츠일반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더 선(The Sun)의 영광과 숙제

필자는 영국에서 17년을 살았다. 한곳에 오래 있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그 장소에 애증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영국 특유의 칙칙함이 싫은 적도 있었지만, 필자는 요즘 영국이 그립다. 그리움의 대상은 꽤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의 대명사인 더 선(The Sun)이다. 런던에 살 때 아침에 밖에 나가면 꼭 사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더 선이었다. 최고의 인기를 얻는 신문을 사긴 쉽지 않았다. 상점 몇 군데를 들러 더 선을 겨우 살 때도 있었고, 아예 못 사는 날도 있었다. 다른 신문들은 쌓여 있는데 더 선만 다 팔린 경우도 많았다. 영국 대학교에는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이 정말 많다. 비(非) 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은 영어도 익힐 겸 영국신문을 자주 보는데, 이들은 꼭 더 타임스나 더 가디언 같은 퀄리티(quality) 신문을 산다. 그에 반해 영국에 꽤 오래 살았던 외국인들은 더 선도 즐겨 본다. 옷차림으로도 특정 사람이 영국에 얼마나 동화됐는지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신문만 봐도 그러한 추측이 가능했다. 더 선은 참 재밌는 신문이었고 가성비도 최고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 가격이 꾸준히 올랐지만, 아무리 비싸도 한국 돈으로 700원 이상 지불한 적이 없다. 더 선은 스포츠, 연예계 뉴스와 더불어 온갖 가십과 스캔들, 그리고 다양한 만화, 독자 고민 상담 코너, 별자리 운세 등 가볍게 읽기에 최적화된 신문이었다. 필자는 더 선을 통해 영국사회나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물론 각종 화제성 기사를 특종으로 다루다 보니 더 선이 구설에 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스포츠와 관련된 대표적인 논란을 소개한다. 1989년 4월 15일 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인 힐스브로에서 FA컵 준결승전이 열렸다.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가 맞붙은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리버풀 팬 2만 5000여명이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리버풀 팬 97명이 사망하고, 700명이 넘는 관중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터진다. ‘힐스브로 참사’로 알려진 이 사건은 영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영국 정부는 사고원인을 조사해 ‘테일러 리포트’를 만들었고, 축구장의 안전성과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문제는 당시 더 선이 힐스브로 참사의 원인을 몰지각한 리버풀 팬들의 소동으로 몰아간 것이다. 더 선은 사건 발생 나흘 후 ‘The Truth(진실)’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로 리버풀 팬들이 피해자의 몸을 뒤져 귀중품을 훔쳤고, 사고 수습을 하던 경찰관들을 폭행했다는 내용을 특종으로 실었다. 당시 많은 영국인은 더 선의 보도를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고, 영국 정부는 재조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참사가 터진 지 23년만인 2012년 경기 주최측과 경찰의 잘못이 밝혀졌다. 이에 당시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케머런이 공식 사과했다. 한편 리버풀 시민들은 더 선의 편파적인 보도에 분노했다. ‘The Truth’ 기사가 나오자 하룻밤 사이에 리버풀이 위치한 머지사이드 지역에서 더 선의 판매고는 40% 급락했다. 머지사이드 주민들은 신문을 불태우는 등 조직적인 저항 운동을 계속 벌였고, 2019년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더 선의 판매고는 80% 감소했다고 한다. 머지사이드 주민들이 대신 선택한 신문은 더 선의 1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던 경쟁지 데일리 미러였다. 더 선의 자매지로는 일요일에만 발행하는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가 있었다. 2004년 이 신문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데이비드 베컴이 개인 비서 레베카 루스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특종을 보도했다. 사실 이 기사는 루스가 자신과 베컴의 스토리를 50만 파운드(7억 6000만원)에 뉴스 오브 더 월드에 판매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유명인의 사생활을 타블로이드에 판매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영국에는 꽤 있다. 1843년 퀄리티 신문으로 창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한때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었다. 1984년 타블로이드로 변신한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유명인사나 연예인 특종, 가십 등을 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2006년 도청까지 해가며 유명인의 사생활을 캐다 적발되어 곤경에 처한다. 대중의 반발과 기업의 광고 철회가 이어지면서, 2011년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폐간했다. 한국의 스포츠신문과 달리, 영국 대부분의 타블로이드는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 판매 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들이 갖는 정치적 영향력도 크다. 더 선은 전통적으로 영국의 보수당을 지지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은 더 선의 영향력을 이용해 보수당 정권을 홍보하기도 했다. 더 선은 재치 있는 말장난도 즐겨 사용한다. 예를 들어, 2013년 조지 왕자가 태어나자 더 선은 신문명을 ‘The Son’으로 바꿨다.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더 선은 2016년 6월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이별 인사인 See you later와 EU를 합친 문장인 ‘See EU Later’를 1면에 싣기도 했다. 영국 최고의 인기 신문인 더 선도 디지털 시대의 파고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양한 뉴스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더 선을 포함해 영국 종이신문의 판매고는 급격히 줄어든다. 2011년 더 선의 하루 발행 부수는 300만이었으나, 2018년에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결국 더 선은 40년 동안 지켜오던 최고 인기 신문의 자리를 2018년 무료 신문인 메트로(Metro)에 내줬다. 더 선은 2020년 125만부를 기록한 이후 발행 부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퀼리티 신문인 더 타임스(37만부)와 더 가디언(11만부)도 2020~21년을 마지막으로 발행 부수 보도를 중단했다. 종이 신문은 결국 디지털화할 것이다. 스포츠신문도 팩트만 보도해서는 디지털 시대에서 승리할 수 없다. 간단한 팩트를 보도하거나 외신을 번역만 한 기사는 이미 차고 넘친다. 사건을 비판적으로 분석, 해석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가진 신문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10.05 07:00
프로야구

[레전드의 수다] '라떼'는 그랬지…"동원이와 찍은 사진 없어"

"옛날에는 기자들이랑 전기 리그 끝나고 야유회도 갔지."(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 "그 당시 낮 경기 끝나면 집에서 기자들하고 고스톱도 쳤어."(김시진 전 롯데자이언츠 감독)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있을 때 쟤(선동열 감독) 좀 데려오라고 추천했는데…."(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멍석을 깔아주니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프로야구 레전드인 만큼 입담의 무게도 묵직했다. 케케묵은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과거엔 민감할 수 있는 '영업 비밀'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간스포츠 창간 53주년 사진전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키워드는 역시 '사진'이었다. 김시진 전 감독은 "다 뺏겨서 없다. 1987년쯤인가, 책을 쓴다고 해서 (출판사에) 사진을 거의 200장 정도 줬던 거 같다. 그걸 돌려받지 못했다"며 "며칠 전 (최)동원이 관련해서 인터뷰했는데 대학생 때 대표팀에 뽑혀 같이 찍은 사진도 없더라. (이만수 전 감독을 가리키며) 당신하고 찍은 사진도 2~3장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시진 전 감독과 이만수 전 감독은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와 한양대 동문에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절친'이다.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이 꽤 길지만, 학창시절 함께 찍은 사진은 귀하디귀하다. 옆에 있던 선동열 전 감독이 거들었다. 선수 시절 불세출의 스타였던 선 전 감독은 일거수일투족이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했다. 그와 관련한 사진을 선점하려고 사진 기자들의 경쟁도 불꽃 튀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그때만 해도 집에 와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앨범을 보고 '이거 좀 쓰고 돌려주겠다'고 그랬지만 실제 돌려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어릴 때 사진이 아예 없다"고 푸념했다. 김시진 전 감독은 "사진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며 "1978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서 (박)철순이형이 필름 카메라를 하나 샀다. 로마 트레비 분수 앞에서 선글라스 끼고 폼을 잡았다. 지나가던 사람한테 사진을 부탁했는데 빽빽(back back) 외치며, 계속 뒤로 가라고 하더라. 그 순간 카메라를 갖고 도망갔다. 그땐 내가 발도 빨랐는데 그를 잡지 못했다"며 웃었다. 취재 환경도 달라졌다. 과거엔 일간스포츠를 비롯한 오프라인 몇몇 매체만 야구를 취재했다. 현장 기자가 적으니 가족 같은 분위기가 유지됐다. 선동열 전 감독은 "전기 리그가 끝나면 후기 리그를 앞두고 브레이크 타임이 있었다. 그때 기자들과 야유회를 가서 각종 고기를 함께 먹었다. 해태의 전통 같은 거였다"고 회상했다. 김시진 전 감독은 "그 당시 (기자라고 하더라도) 나이가 많으면 형처럼 생각하고 같이 어울렸다"며 "부산(롯데)에 있을 때는 와이프한테 전화해서 (기자들과) 집으로 갔다. 거기서 고스톱도 치고 복개천에 나가서 술도 함께 마셨다"고 맞장구를 쳤다. 선동열 전 감독과 김시진 전 감독은 '슬라이더 마스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 전 감독은 "선 감독 공을 처음 본 게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차출되고 나서다. 그때 선 감독은 고려대를 다닐 때였고, 난 군대 상병이었다. 서울 역삼도 반도유스호스텔에서 합숙했는데 선 감독의 슬라이더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어떻게 슬라이더 추진력이 저렇게 좋을까 싶었다. 타자 앞에서 꺾이는 게 내가 던지는 슬라이더하고 차이가 있었다. 다만 어떻게 던지냐고 물어보진 못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멋쩍게 칭찬을 듣고 있던 선동열 전 감독은 "시진이 형이나 (임)호균이 형을 비롯해 선배들이 던지는 걸 보고 '우리나라 투수가 최고구나' 싶었다. 시진이 형은 투구 폼이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커맨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만수 전 감독은 선동열 전 감독을 향해 "쟤가 왔어야 했다"며 농을 쳤다. 이 전 감독은 1997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이듬해 미국 행을 선택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포수와 불펜코치로 활약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당시 켄 윌리엄스 화이트삭스 단장과 제리 매뉴얼 감독에게 (선동열) 영입을 추천했다. 선동열 감독은 영리해서 잘할 거 같았다"며 "(그 당시 미국에선) 아시아 야구를 얕보는 게 있었다. 선동열 감독이 (메이저리그를) 통일시켰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조계현, 이강철까지 3명을 추천했는데 모두 내 타율을 깎아 먹은 투수들"이라고 추억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미국에서 깜짝 놀란 건 영업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걸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주더라. 우리와 스타일이 달랐다"고 했다. 이를 듣고 있던 김시진 전 감독은 "우리 땐 올스타전을 3차전까지 했는데 당시 친한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면 그립 같은 영업 비밀을 다 알려줬다. 그래서 올스타가 아니라 '술스타'였다. 이 감독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 몰랐을 뿐"이라며 껄껄 웃었다. 일간스포츠와 사연도 깊다. 일간스포츠는 1984년까지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였다. 프로야구가 태생한 1982년에도 유일하게 현장을 지켰다. 선동열 전 감독은 "소년 체전에 나갔던 중학생 때 일간스포츠에 처음 기사가 실렸던 거 같다. (프로에 와서는) 1988년부터인가 일간스포츠가 주관하는 시상식에서 최고투수상을 다섯 번인가 연속으로 받았다. 그때만 해도 다섯 냥짜리 금메달을 부상으로 줬다. 아직도 그걸 갖고 있다. 일간스포츠와 좋은 추억이 많다"고 회상했다. 김시진 전 감독도 뒤지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일간스포츠에 처음 나온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동대문야구장에서 비가 와서 노게임이 선언됐는데 다음 날 선발로 나가서 이겼다.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됐다"며 "(은퇴한 뒤에는 일간스포츠 시상식에서) 프로코치상을 두 번인가 세 번 받았다. 난 일간스포츠에 서운한 게 하나도 없다"며 웃었다. 이만수 전 감독도 선수 시절 일간스포츠 시상식과 지면을 수차례 채웠다. 2017년에는 일간스포츠와 조아제약이 공동 제정한 조아제약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자비로 자선 재단 헐크파운데이션을 만들고,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는 산파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09.28 08:28
스포츠일반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더 선(The Sun)을 아십니까?

2022년 9월 26일은 본 칼럼이 연재되고 있는 일간스포츠가 창간한 지 5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종합지의 스포츠 섹션은 분량이 한정적인데 반해, 스포츠신문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중점적으로 보도한다. 국내 스포츠는 1980년대 들어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야구(KBO리그)와 프로축구(K리그)가 출범한데 이어,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올림픽이 서울에서 연달아 개최됐다. 축구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꾸준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아울러 1994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MLB) 계약은 국내 팬들이 해외 스포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스포츠의 인기 상승과 함께 스포츠서울(1985년)과 스포츠조선(1990년)도 연달아 창간했다. 스포츠신문의 전성시대였다. 1990년대 서울 지하철의 풍경을 기억하는 독자분이 있다면 그 당시 스포츠신문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알 것이다. 프리미어리그(EPL)의 인기와 함께 국내에도 영국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들의 스포츠신문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영국 스포츠신문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7세기 영국에는 뉴스와 가십(gossip, 소문·잡담)을 다루는 정기 간행물이 출현했다. 17세기 후반에는 영국 정부의 검열 완화와 더불어 더욱더 많은 출판물이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간 신문 더 타임스(The Times)는 1785년 창간했다. 19세기 초반 선도적인 신문의 자리에 오른 더 타임스의 영향으로 세계의 많은 신문사는 ‘타임스’란 이름을 차용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뉴욕타임스다. 1896년에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라는 신문이 런던에서 창간했다. 데일리 메일은 중산층 이하의 독자를 겨냥한 영국 최초의 일간 신문이었다. 여성 독자를 겨냥한 첫번째 신문이기도 했던 데일리 메일은 큰 인기를 얻어, 하루에 백만 부 이상을 판매한 영국 최초의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영국 신문은 3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번째 형태는 품질을 중시하고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뉴스와 사설, 논평 등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퀄리티(quality)’ 신문이다. 이들은 브로드시트(broadsheets)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커다란 신문 크기에서 이러한 이름이 유래했다. 브로드시트는 보통 57cm 정도의 긴 세로 면을 가지고 있다. 더 타임스, 더 가디언 등이 영국을 대표하는 퀄리티 신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인기 있는(popular)’ 신문이다. 브로드시트보다 작은 크기로 발행되는 관계로 이들을 타블로이드(tabloid)라고 부른다. 타블로이드는 중요한 사건의 객관적인 기사보다는 주로 대중의 흥미를 끄는 보도를 중요시한다. 황색 언론과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역사적으로 타블로이드는 신문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했다. 브로드시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대중적인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더 선, 데일리 미러, 데일리 스타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퀄리티’와 ‘인기 있는’ 신문의 중간 역할을 하는 이들을 ‘중간 시장 신문(middle-market newspaper)’이라고 부른다. 이 신문은 중요한 뉴스를 보도할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는 독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들은 타블로이드 형태로 발행되고, 데일리 메일과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여기에 속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자료를 보면 영국민들은 심각한 뉴스를 다루는 퀄리티 신문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더 선은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신문이었다. 1980~90년대 이 신문의 하루 평균 발행 부수는 400만 부에 가까웠다. 2000~2010년대에도 300만 부 이상을 꾸준히 발행했다. 서민과 노동자 계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더 선은 스포츠와 연예계 뉴스 및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 같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주제를 중점으로 보도한다. 더 선의 전신은 1964년 창간된 브로드시트 신문인 데일리 헤럴드였다. 하지만 1969년 호주의 유명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 후 더 선이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재탄생한다. 한국의 일간스포츠와 영국의 더 선은 1969년 창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선의 3번째 페이지(Page 3)는 초창기 신문이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 11월 더 선은 영국 타블로이드 최초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topless, 상의를 입지 않은) 차림의 매력적인 여성 모델 사진을 실었다. ‘Page 3 girl’이라 불리는 이들 덕분에 다음해 더 선의 판매량은 두 배로 뛰었다. 결국 1978년 더 선은 데일리 미러를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 된다. 이러자 다른 타블로이드도 경쟁적으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 모델 사진을 올리게 된다. 페이지 3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다양했다. 오락의 한 요소로 이를 좋아한 독자가 있는데 반해, 보수적인 이들은 전국 신문에 올리기에는 부적절한 ‘소프트 포르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사진이 여성을 비하하고, 성차별을 지속시킨다며 반대했다. 정치권도 상반되는 반응을 보였다. 페이지 3의 사진을 없애자는 주장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결국 의회에서 페이지 3에 반대하는 법안은 제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부터 ‘No More Page 3(페이지 3는 이제 그만)’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됐고, 여기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이 140명에 이르렀다. 아울러 많은 대학과 노동조합도 이에 가세했다. 결국 더 선은 토플리스 여성 모델 사진을 사용한 지 44년만인 2015년 1월 페이지 3를 중단했다. 다른 타블로이드도 더 선의 결정을 따랐고, 2019년 4월 데일리 스타를 마지막으로 타블로이드 일간지에서 페이지 3 사진은 사라졌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9.28 07:00
연예일반

[IS 창간53] 일간스포츠 광고로 본 시대의 발전(ft. 1970~2020년대)

일간스포츠가 2022년 창간 53주년을 맞았다. 반세기를 지난 일간스포츠는 스포츠, 연예 소식은 물론 국내외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전달하며 독자들의 친구로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에서 친근하게 매분, 매시, 매일 만나고 있다. 일간스포츠는 창간 53주년을 맞아 과거부터 현재까지 신문에 실린 광고를 통해 세월의 흐름, 트렌드의 변화를 한 눈에 알아봤다. #1970년대 : 성장의 시대 1970년대는 한국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함과 동시에 국내 프로야구, 프로축구 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 시계업체 시티즌은 미국의 3번째 달 착륙선 아폴로 13호를 기념해 ‘약진하는 시티즌’이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식료품, 주류광고 또한 지면에 등장하며 국민의 소비 활동이 활발한 시기였음을 보여줬다. #1980년대 : 88올림픽과 호돌이 1980년대 한국은 내부적으로 격변기를 지났고 외부적으로는 국운 상승기였다. 1980년대 초반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계엄령 철폐가 일어났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각인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는 한국의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자동차, 오토바이, 맥주 등 다양한 회사들은 올림픽을 응원하고 선전하는 광고를 지면에 올렸다. 1984년에는 지면의 컬러전환이 이뤄져 시각적 재미를 더했다. # 1990년대 : IMF와 금모으기 운동 1990년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호황이 정점을 찍은 황금기임과 동시에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최악의 경제적 시련기였다. 금융시장 자율화 정책이 시작되며 외국 투자자들이 활발히 투자를 이어왔다. 당시 산업들의 부실로 인해 투자심리가 위축됐고 기업들은 연쇄부도를 면치 못하며 보유 외환이 바닥이 났다. 그 이후 IMF가 터져 국가가 갚아야 할 외화 빚이 산더미로 불어났다. 이에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 국가를 살리기 위해 시계나 금, 은, 등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국가에 헌납해 외환위기를 국민의 힘으로 극복했다. # 2000년대 : 기술 발전과 광고 혁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1면의 광고뿐만 아니라 작은 광고들이 지면 곳곳에 고루 실리기 시작했다. 로또, 휴대폰, 비데, TV, 협회 등 장르와 종목을 떠나 다양한 광고들이 신문을 수놓았다. 정보통신기술 혁신, 국민 소득 증가로 경제 활동 인구를 타깃으로 한 광고가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 축구대회가 개최되면서 관련 광고들이 성황이었다. 일간스포츠는 2009년 들어 판형을 전환해 유가신문 중 콤팩트판으로 전환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2000년 이후 스포츠신문의 이미지와 패턴에 한계가 왔다고 판단, 판형 변화를 돌파구로 삼은 것이다. 판형은 물론 콘텐츠의 물갈이를 통해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신문 시장을 구축, 광고주와 독자를 동시에 사로잡았다. # 2010년대 : 거대 상업 광고의 등장 2010년대는 종류를 불문하고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광고들이 게재됐다. 보험, 렌털, 기능식품, 유아용품 등 브랜드 광고들이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2018 평창에서 열린 제23회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올림픽을 응원하는 회사와 방송국 매체들이 홍보 광고를 실기도 했다. # 2020년대 : 팬클럽 광고 한류가 나날이 성장하면서 팬덤의 규모 또한 상상을 초월만큼 컸다. 회원 수는 물론 이들이 스타를 위해 소비하는 금액도 이전보다 훨씬 커지면서 스타의 생일, 데뷔 날, 기념일 등을 기념한 팬클럽 광고가 대형으로 지면을 장식했다. 과거에는 국내 팬덤을 중심으로 이러한 광고들이 집행됐다면, 현재는 해외 팬덤이 단독으로 주도하는 기념 광고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의 팬덤 화력이 전 세계적으로 더 거세짐에 따라 멤버 개인을 위한 광고도 왕왕 있다. 김다은 기자 dagold@edaily.co.kr 2022.09.26 08:30
야구

[IS 비하인드①] 'From 1982 To 1996' KBO의 역사는 왜, 어떻게 바로잡혔나

사람들은 왜 야구를 '기록의 스포츠'라고 부를까. 왜 다른 종목보다 야구가 '기록'의 가치를 가장 높이 평가할까. 이유는 하나다. 야구는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플레이 하나, 하나가 모두 기록지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유일한 종목이라서다. KBO는 지난 2일 '1982~1996년 6168경기 기록 검증 및 데이터화 최종 완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팀간 연습경기조차 열리지 못하고, 언제 시즌을 개막할 수 있느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던 시국. 많은 야구팬들에게는 그저 쏟아지는 야구계 주변 소식들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졌을 수 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KBO 리그 첫 15시즌의 기록 검증과 데이터화 작업은 오랜 시간 KBO가 공을 들여 준비해 온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매 경기 KBO 기록위원이 작성하는 공식 기록지에는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상황들이 모두 담긴다.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였는지, 볼이었는지, 인플레이 타구가 됐는지는 물론이고 헛스윙이었는지, 파울이 됐는지, 혹은 아웃이 됐어야 할 파울 타구를 야수가 잡지 못하고 실책이 돼 타격 기회가 이어졌는지까지 상세히 표기된다. 1점이 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 팀이 2사 2루에서 적시타로 점수를 뽑았을 때, 기록지 안에는 어느 타자가 어떤 안타로 타점을 올리고 어느 주자가 홈을 밟았는지만 표시되는 게 아니다. 앞서 두 개의 아웃카운트는 어떻게 올라갔고, 주자는 어느 시점에 어떻게 루상에 나가 2루까지 밟았으며, 그 과정에서 양 팀이 공격과 수비에서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과정 하나, 하나에서 모두 의미를 찾아내는 게 바로 '야구'라는 종목의 진짜 재미다. 1982년부터 2019시즌까지, 38년 간 열린 수많은 게임의 기록이 지금까지 모두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왔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매일같이 전 경기를 TV로 중계하지 못했다. 프로야구 TV 중계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지상파에서 어쩌다 한 번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여겨졌고, 야구장을 찾지 못한 팬들은 집에서 라디오 볼륨을 높여 가며 야구를 귀로 듣거나 다음날 아침 스포츠신문을 통해 경기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니 영상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과거 프로야구 경기의 숨겨진 순간들을 복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경기의 기록지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것뿐이다. 공식 기록지에 새겨진 자취 하나하나가 모두 40년 가까운 KBO 리그의 값진 역사다. KBO가 그 '실록'을 다시 한 번 검증하고 데이터베이스로 남기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국내 최고 규모와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야구는 현재 공식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와 손잡고 방대한 분량의 성적과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KBO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선수 이름을 검색창에 적어 넣고 엔터키를 누르기만 해도 최근 성적부터 통산 성적, 상대 투수별 성적과 상황별 성적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경기 공식 기록원이 '뷰어'라는 이름의 전산 기록지에 경기 내용을 입력하면, 이 기록이 스포츠투아이로 곧바로 전송돼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된다. 경기 후에는 수기로 입력한 기록지와 온라인 기록지를 비교해 곧바로 정확성을 검증한다. 그러나 KBO가 야구 기록을 온라인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리그 역사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2001년부터였다. 2000년까지만 해도 기록 관리 작업은 모두 수기로 이뤄졌다. 기록원이 '넷텀'이라는 전산 프로그램에 경기 기록을 입력하면 KBO가 이 자료를 일일이 종이에 프린트해 월 단위로 묶어 제본한 뒤 서고에 순서대로 꽂아뒀다. 심지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전산 입력 자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기록원이 경기 중에 작성한 기록지를 그대로 제본해 보관하는 수준이었다. 과거 경기의 기록을 찾아봐야 할 일이 생기면, 직원이 서고에서 해당 시즌과 해당 경기 기록지를 찾아낸 뒤 매번 계산기를 두드려 직접 집계해야 했다는 의미다. 힘들고 번거로운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한 일이라 그동안 공개돼 온 여러 기록에 크고 작은 오류가 생겼을 수 있다는 게 늘 고민거리였다. 그 어느 종목보다 기록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KBO 관계자들은 '프로야구 초창기 기록도 모두 전산으로 입력해 언제든 정확한 통산 기록과 통계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숙제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러자 스포츠투아이가 전산화되지 않은 시즌 가운데 가장 가까운 4년(1997~2000년)까지의 기록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에 고무된 KBO도 2004년을 기점으로 이전 15시즌(1982~1996년)의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서로 공식적인 협업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다.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공감대 하나만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다. 당연히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15년 간 열린 경기 수만 총 6168게임. 검증해야 할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년도 아닌 한 달 치 경기 기록과 팀 순위, 선수 개인 순위 등을 제본해 놓은 B4 크기 파일의 높이가 웬만한 스마트폰을 세로로 세워 놓은 크기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야구 기록'에 대한 애착이 담당자들을 움직였다. 일단 기록위원회 위원들이 1982년 4월 프로야구 개막전을 시작으로 매 경기 1회초 원아웃부터 9회말 스리아웃까지의 내용을 차곡차곡 전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 후 KBO 홍보팀 전 직원과 스포츠투아이 기록 전문 인력들이 이 자료를 건네 받아 다시 한 번 공식 기록지와 비교하며 검수하고, 이전에 기록됐던 내용들의 오류를 잡아내는 검증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과거 기록원의 오기로 잘못 집계된 기록이 총 16000여건 발견됐다. 대체적으로 무명 선수의 대수비 혹은 대주자 출전이 출장 경기 수에 포함되지 않거나, 경기 후반 대체 출장한 선수의 기록이 박스 스코어에는 선발 출장한 선수의 기록으로 잘못 표기되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내로라하는 레전드 스타나 유명한 선수들의 기록이 오류로 소폭 조정되는 케이스도 나왔고, 반대로 홈런 기록은 오류가 단 한 개도 없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남정연 KBO 홍보팀장은 "아무리 옛 기록을 데이버테베이스화한다고 해도 그 기록 자체가 틀린다면 힘들게 작업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안타 하나, 삼진 하나도 틀리지 않은, 100% 정확한 공식 기록을 구축하기 위해 검증을 하고 또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 세월이 무려 17년이나 걸렸다. 참여한 직원들 모두 각자 맡은 업무를 해 나가는 가운데 틈을 내 작업에 참여하느라 처음엔 속도가 더뎠지만, KBO 리그 40주년인 2021시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우리 프로야구 역사가 4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전 경기 기록 데이터화를 완료하자'는 데 뜻을 모은 덕분이다. 남 팀장은 "40주년에 임박할 때까지 계속 작업을 하게 되면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 같아 '무조건 2020시즌 개막 전에 다 끝내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무사히 끝마치게 돼 다들 뿌듯해하고 있다"며 "제발 각 부문 통산 1위와 2위 주인공이 바뀌는 일만 없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웃어 보였다. KBO는 이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새롭게 정리된 기록들을 재작업해 각 선수별로 어떤 기록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수정됐는지 상세히 분류한 자료를 만들고 있다. 프로에서 뛴 모든 선수가 자신의 기록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또 출범 40주년에 앞서 이번 작업의 결과물과 그간 쌓아 온 기록들을 토대로 한 'KBO 40년 기록 대백과사전'을 출간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남 팀장은 "야구는 기록 위에 역사를 쌓아 왔고, 또 앞으로 계속 쌓아 갈 스포츠다. 한 번쯤 이렇게 모든 기록을 정리하고 바로 잡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점점 모든 수치들을 쉽게 찾고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기록, 가공된 기록에만 가치를 두는 경향이 생기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옛 기록이 올바른 뿌리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에 (기록 검증 작업을 통해) 좋은 토대를 마련하길 바랐다"고 했다. 배영은 기자 관련기사 'From 1982 To 1996' KBO의 역사는 왜, 어떻게 바로잡혔나 '550→549' 전준호의 도루 하나가 잘못 집계된 이유는? 2020.04.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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